2025년 여행업계 회고: 회복 이후,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까
회복 이후, 우리가 서 있는 자리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많은 분들이 “회복”을 떠올릴 겁니다. 맞는 말이에요. 수요는 돌아왔고, 여행은 다시 일상이 됐습니다. 다만 한 해를 천천히 되짚어보면, 저는 이런 생각이 더 많이 들더군요.
회복은 끝났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들어섰다는 느낌입니다.
숫자는 회복됐지만, 체감은 조금 달랐습니다
2025년 해외여행 수요는 거의 2019년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공항은 다시 붐볐고, 일본과 동남아 노선은 말 그대로 꽉 찼죠. 인바운드도 빠르게 회복됐고, “한국이 다시 관광지로 돌아왔다”는 말이 실감났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느끼는 온도는 조금 달랐습니다.
손님은 늘었는데, 일이 더 쉬워졌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거든요.
여행은 늘었지만 방향은 꽤 뚜렷했습니다.
- 멀리보다는 가까운 곳
- 길게보다는 짧게
- 비싸게보다는 납득 가능한 가격
이 흐름은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소비자들은 여행을 줄인 게 아니라, 더 계산적으로 여행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업계 입장에서는 회복의 숫자보다 운영의 밀도가 더 높아진 한 해였다고 느껴집니다.
2025년은 ‘돈의 방향’을 계속 생각하게 만든 해였습니다
올해 유독 자본과 관련된 뉴스가 많았던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하나투어 매각 추진 이슈를 보면서, 많은 업계 관계자분들이 단순한 M&A 이상의 감정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통 여행사의 자리는 여전히 큰가요?”
“아니면 이제 다른 형태로 바뀌어야 하는 걸까요?”
실적은 분명히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늘 그 다음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의 구조가 내년에도 통할 수 있느냐는 질문 말이죠.
항공업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통합은, 업계에 오래 계신 분들일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을 겁니다. 경쟁 구도가 바뀌면 가격도, 서비스도, 제휴 구조도 다시 짜여야 하니까요.
소비자에게는 편리함과 불안이 동시에 느껴지는 변화였고, 업계에는 ‘이제 예전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신호처럼 다가왔습니다.
플랫폼 영역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습니다.
한쪽에서는 IPO를 이야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산·환불 문제로 신뢰가 흔들렸죠.
올해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여행은 온라인에서 팔리지만, 여행이라는 상품의 무게는 여전히 오프라인적이다.
소비자는 더 부드러워졌고, 동시에 훨씬 냉정해졌습니다
2025년의 여행 소비자는 예전보다 훨씬 정제돼 있습니다.
무작정 싸다고 움직이지 않고, 비싸다고 무조건 만족하지도 않죠.
“왜 이 여행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길 원합니다.
일정이 어떤 피로를 줄여주는지, 이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이에요.
MZ세대의 혼행과 소규모 여행은 이미 일상적인 풍경이 됐고,
가족 여행과 시니어 여행은 더 이상 ‘부가 시장’이 아닙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는 여행을 소비가 아니라 삶의 완성도로 바라보고 계시죠.
올해 눈에 띄었던 웰니스 여행, 취향 여행의 확산도 같은 맥락입니다.
여행이 쉬기 위한 시간이기보다는, 나를 다시 정렬하는 시간처럼 쓰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술은 조용히 기준선을 바꾸고 있습니다
2025년의 기술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겠죠.
생성형 AI 여행 플래너는 아직 완벽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어긋난 추천도 여전히 많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완성도가 아니라 시작점이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여행은 검색창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대화로 시작하고, 맥락으로 확장되죠.
그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업계의 기본 전제를 바꾸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무인화와 자동화가 거의 생활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키오스크, 모바일 키, 로봇 서비스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닙니다.
없으면 운영이 어려운 수준까지 와 있죠. 인천공항의 변화도 그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기술은 여행을 혁신하기보다, 여행을 계속 가능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정책 역시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2025년 관광 정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많이 오게 하는 것에서, 잘 머물게 하는 것으로.”
외래객 수는 회복됐지만, 체류 기간과 소비의 질은 여전히 숙제입니다.
그래서 지역 분산, 고부가 콘텐츠, 디지털 관광 인프라 같은 키워드가 더 자주 등장하고 있죠.
이제 관광 정책도 여행업계와 마찬가지로 묻고 있습니다.
이 성장은 지속 가능한가요?
그래서 2026년을 생각해보면요
2026년은 더 솔직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회복이라는 단어 뒤에 숨을 수 없는 해라고 해야 할까요.
- 단거리 여행은 더 강해질 거고
- 장거리 여행은 더 분명한 이유를 요구받을 겁니다
- 개인화는 옵션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고
- AI는 기능이 아니라 전제가 되겠죠
- ESG는 선택이 아니라 평가 기준이 될 겁니다
결국 여행업은 이런 질문을 다시 받게 될 겁니다.
“이 여행은 왜 존재하나요?”
“이 서비스는 왜 당신들이어야 하나요?”
2025년은 분명히 돌아온 해였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전으로 돌아간 해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지면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이 2025년의 마지막 날이라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리할 시간이 있고, 숨을 고를 여유가 있으니까요.
내일부터 시작될 2026년은,
올해보다 조금 더 차분하게, 하지만 더 정확하게
여행업계의 실력을 묻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